송기숙 작가
유신정권 ‘학생감시’ 거부로 옥고
5,18월 활동으로 다시 구속
2만5천매 ‘5월항쟁사료전집’ 편찬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등 역임
대하소설 <녹두장군>과 장편 <암태도> 등을 쓴 작가 송기숙이 5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송기숙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붓으로 헤쳐 온 ‘역사의 장부’(평론가 임규찬의 표현)였다. 동학농민전쟁에서 6•25 동족상잔, 1980년 5월 광주까지 최근세사의 주요 국면들을 그는 살뜰히 챙겨 소설로 갈무리했고, 독자는 그의 소설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보는 눈을 키웠다. 이뿐만 아니라 송기숙은 유신 말기 ‘교육지표 사건’부터 5월 광주에서 활동했다,
1980년대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5•18 연구소’ 등에 몸을 담그며 실천과 투쟁을 마다치 않은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1935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송기숙은 전남대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마치고 목포교육대학을 거쳐 1973년 모교인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8년 유신 정권이 교수들에게 학생감시 차원에서 ‘학생 지도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동료 교수들과 함께 ‘우리의 교육지표’라는 선언문을 발표하며 항의하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징역 4년형을 받는다. 1년간 복역한 뒤 석방되었지만 그만은 다른 교수들과 달리 복직이 되지 않은 채 5•18 광주민중항쟁을 맞았고, 시민군 협상대표인 수습위원으로 활동했다고 해서 내란죄를 뒤집어쓰고 구속되어 다시 1년을 복역하게 된다. 그는 해직 7년 만인 1984년 8월에 복직했으며 2000년 8월 정년퇴직할 때까지 후학을 가르치며 소설을 썼다.
1972년 첫 소설집 <백의민족>을 묶어 냈고 1977년에는 일제강점기에서 4•19혁명까지를 배경으로 소작농들의 수난과 싸움을 그린 첫 장편 <자랏골의 비가>를 출간했다. 그 뒤 소설집 <도깨비 잔치> <개는 왜 짖는가> <들국화 송이송이> 등과 장편 <암태도> <녹두장군>(전12권) <오월의 미소> 등을 부지런히 쏟아냈다.
<암태도>는 1920년대 목포 앞 섬 암태도에서 벌어진 소작쟁의를 소설로 옮긴 작품이다. 600명 남짓 소작농들이 배를 타고 나가 목포 경찰서와 법원 마당에서 원정 농성을 벌이는 등 강력한 투쟁을 벌인 이 사건에 대해 작가는 “사건 자체가 극적인 구성을 띠고 있으며, 반봉건적•반일적인 순수 민중운동이 암태도라는 작은 섬에서 불타올라 마침내 성과를 거둔 것이 무엇보다 통쾌했기 때문에 실제 사건에 별다른 첨삭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1996년 <한겨레> 기자와 암태도 현장을 답사했을 때 말했다.
그의 대표작 <녹두장군>은 전봉준의 제자 김달주를 중심으로 동학농민전쟁의 전모를 그린 대작이다. 광주항쟁 이듬해인 1981년 연재를 시작해 동학농민전쟁 100주년인 1994년에 완간된 이 작품은 동학농민전쟁과 1980년 광주민중항쟁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데다, 꼼꼼한 취재를 거쳐 농민군의 움직임과 농사 절기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소설에 반영하는 등의 독보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 작품은 “농민전쟁을 다룬 다른 역사소설과는 달리 동학과 농민의 관계에 대한 균형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고 농민전쟁을 농민 생활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평을 얻으며 1994년 제9회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광주항쟁 20주년인 2000년에 낸 <오월의 미소>는 그 자신 사태의 한복판에서 경험하고 이후 한국현대사 사료연구소(현 전남대 5•18연구소) 소장으로서 광주항쟁 참여자 700여명의 구술 증언과 기타 자료 등을 모아 원고지 2만5천장 분량으로 <5•18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을 낸 그가 화해의 관점에서 ‘5월 광주’에 접근한 작품이었다.
송기숙은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회장과 총선시민연대 공동대표, 청와대 소속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초대 위원장 등을 맡아 문학 안팎 사회 활동에도 열심을 보였다. 만해문학상 말고도 현대문학상, 요산문학상, 금호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탄탄한 체구와 친근감 넘치는 외모로 주변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리고는 했던 송기숙을 두고 고은 시인은 “천연기념물 송기숙/ 광주는 그가 있어 광주가 참다웠다/ 아무리 바람 찬 세월일지나/ 그가 있어 광주의 밤이 착하디착하였다”(<만인보>)고 읊었고, 동료 작가 이문구는 이런 인물평을 남겼다.
“그는 문학으로는 언제나 넘볼 수 없는 선생이었고, 술판을 마주하면 스스럼없는 선배였으며, 함께 여관 잠을 잘 때는 여러 가지가 서로 닮아 길을 가던 사람이 보더라도 영락없는 친구였다.”
광주 지역 시민 단체는 6~7일 광주시 동구 금남로 1가 광주와이엠시에이 무진관에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 고 송기숙 교수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애씨와 자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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