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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언어

sisa3369 2022.12.05 22:28 조회 수 : 35

세간에 대통령의 언어가 뜨거운 이슈로 등장하더니 갈수록 가관이 되고 있다. 

강대국 미국에 욕설(이새끼들)에, 시중잡배가 할 소리(쪽 팔려서 어쩌냐)를 하는 판에 언감생심, 대통령의 언어를 논하기는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과연 대통령의 언어란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언어로 사람들에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원래 시중에 떠도는 말이란 표현도 명확하지 않고, 주제도 명확하지 않는데도 그저 부풀려지고 반죽되어(마사지) 멋대로 편리한대로 인용되는 게 시중의 언어다.

윤의 언어도 명확하지 않았고 대상 또한 애매했지만, 편리한대로 마사지 되어 인용되고 회자膾炙 되었다. 

이제 생각하면, 지켜지지 못할 말이었고, 거짓말이 분명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작금에는 전혀 다른 대통령의 언어가 문제되고 있다. 하기사 그 언어를 잘 뜯어보면 최근 외교참사, 이태원참사 등등에 한결같이 스며드는 윤의 언어이기도 하지만. 

지난 국무회의에서 윤석열은 한동훈에게 뱉은 언어가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법을 제대로 안 지키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한다” (1)

“집단행동 과정에서 일체의 강요와 폭행은 물론, 집단행동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에 보복을 벼르는 일체의 불법에 대해 예외없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각오”라는 말도 나왔다. (2)

윤의 입에서 직접 나온 언어는 “’범죄 쟁의’, 끝까지 법적 책임 묻겠다”는 것이다.

(1)의 언어는, 한동훈의 도곡동 자택을 찾아간 유튜브 ‘더탐사’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더탐사’가 한의 자택을 찾아 취재를 한 것은 27일, 그리고 다음날 한은 기자 5명을 보복 범죄, 공동주거침입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그리고 법무부장관인 한의 언어는 

“더탐사 같은 곳이 정치 깡패들이 했던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한동훈의 지시로 조국의 딸 아파트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위협한 자들이 할 소리는 절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나만 그런가.

‘나는 바담 풍 해도 니들은 바람 풍 해라’는 혀 짧은 서당 훈장의 우스개처럼, 지들은 괜찮고 시민은 안 되는 사슴가죽에 새긴 율법은 누가 만든 것인가.

 

녹피에 가로 왈

기자들은 도곡동을 찾아간 이유를 “강제 수사권은 없지만, 경찰 수사관들이 기습적으로 기자들이 압수수색 당한 마음이 어떤 한지를 한동훈도 공감해보라는 차원에서 취재해볼까 한다”고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압수수색에 대항한 셈이다. 

여기에 국무위원 공직자(공인)를 언론이 취재할 권한이 있는 것인가. 그 범위는 어디까지 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한이 고발 조치했다. 

윤 역시 보복적으로 법무부장관이 앉아 있는 국무회의 석상에서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주라고 따로 명령할 필요가 있는가. 이게 장관과 대통령의 언어다. 

특히 평생 법을 공부한 자들이 ‘고통’이란 언어를 사용했다. 보복적으로 고통의 형벌을 가하는 것은 요즘 조폭들 밖에 없다. 윤은 평소에도 조폭들을 비교하는 언어를 쓰곤 했다. 

즉, ‘수사로 보복하면 그게 조폭이지 검사 입니까’

고통의 형벌은 사라진지 오래되고 낡은 법전에나 남아있다. 함무라비가 아니더라도 죄진 만큼 벌을 가하는 잔인한 폭력은 형벌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이미 보복이 아닌 범죄예방, 순화로 바뀐 법전을 그들 법비들이 모른단 말인가.

현대사회에서 고통의 형벌은 독재자들 입의 혀처럼 사용했던 방식이었다. 스탈린이 아니더라도 박정희 전두환이 그러한 것을 아직 생생하게 알고 있다.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다. 불과 3-40년전 우리의 역사다.

감옥에 가두고 거주 이전의 자유를 박탈하고, 금전적 자유를 제약하고, 노역으로 노동을 강제하는 것 정도가 지금의 형벌이고 고통이다. 여느 검사 또는 어떤 수사기관에서, 범인에게 고통을 보여주라고. 한다면 나라가 엎어지고 대통령 탄핵 시위가 광화문을 메울 것이다.

그들 뇌리엔 때리고 고문하는 고통의 형벌이 아직 남아있는 것인가.

 

일상의 행동과 말

걸핏하면 반말에 아무에게나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태도는 윤의 언어와 함께 차츰 폭력화되어 가는 중이다.

지금 대통령의 언어를 기대하는 사람은 국힘당 자파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미 윤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했기 때문이다. 철들고 20년 넘도록 ‘검사질’만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어떠한지 다시금 깨달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한동훈처럼 20대 초반에 ‘영감님’으로 우대 받는 길만을 걸어온 자들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이른바, ‘검사 곤조’ 혹은 ‘검사질’을 하지 않은 검사가 무릇 얼마나 될까. 

대오각성하고 자신이 하고 싶지 않아도 주위에서 가만두지 않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쉽게 그런 짓들을 옆에서 보면서 살아왔을 한국의 남성사회 아니던가. 권력에 줄 서고,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으로 해결하고,,, 말이다.

남을 구속하고 처벌할 힘을 가진 자는 힘이 쎄다. 언제든지 그 대상이 내가 될수 있기 때문에 엎드려야 한다. 혹 주위에 누가 처벌 위기에 놓이면 적어도 찾아가 사정할 동아줄이라도 마련해 두어야 하기에 또 엎드려야 한다. 이래서 권력 주변에는 똥파리들이 꼬이는 법이다.

룸방에서 텐프로와 함께, 2차까지 자-알 접대한다. 매번 선물을 갖다 바친다. 수사비라며 촌지봉투도 철철이 갖다 바친다. 그렇게 권력 주변에서 똥파리로 사는 걸 검새놈들은 ‘스폰서’라고 둘러대며 수십년동안 그 짓을 해왔다. 철면피하게.

모두 뇌물이고 대가성 청탁이며 불법수수 행위다. 그럼에도 처벌받은 검새놈은 기껏 몇놈 안 된다.

며칠전 김학의 놈도 대법에서 무죄를 받았다. 

한적한 원주 별장에서 홀랑 벗고 십여명의 남녀가 떼섹스를 함께 즐겼다는데, 참 그 장면은 영화 ‘내부자’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보수언론 주필, 대권후보 정치인, 재벌 사업가가 어울려 노는 장면은 홍석현과 윤석열이 서울지검장 시절 지하 술집에서 만나 ‘베사메무쵸’를 부르며 폭탄주를 마셨다는 장면과 흡사하다. 다만 별장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홀랑 벗지 않은 것은 다를지 모르겠다.  

‘안 봐도 비디오’라는 우스개처럼 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모두를 감출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 진위는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걸핏하면 윤의 한밤중 술집 순례가 터진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식으로 방귀가 잦으면 똥 싸는 법이다.

‘사적’ ‘공적’ 언어와 공간도 구별 못한 리더를 둔 국민들은 오늘도 추위속에 거리에서 구호를 외친다.

이미 사적 언어를 넘어 막말에 욕설까지, 대통령이 대통령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국민들도 막말에 욕설로 대들지 않겠는가.

그게 바른 세상 아닌가 말이다.

 < 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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