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이슈분석> 김재규 의인인가 살인자인가

김성신 유족대표와 강신옥 변호사

 

40년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김재규 장군을 뒤집을 수 있는 증거나 결정적 상황은 쉽지 않다. 남겨진 혹은 전두환 일당에 의해 숨겨진 자료들을 찾거나 당시 재판에 관여했던 내용을 뒤돌아 볼 수밖에 없다

김재규의 변호사는 강신옥이었다. 첫 선임도 아니었고 막판에는 김재규가 변호를 거절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고 강산도 4번이 바뀐 마당에 숨겨진 진실은 얼마나 드러날 수 있을까. 살인자에서 의인, 나라를 구하고 수많은 학살자를 구한 민주주의 화신으로 바뀔 수 있을지 궁금하다.

확실한 것은 유신을 향해 쏜 그의 총알이 유신독재를 끝장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박정희가 죽지 않고 더 살았다면 한국이 어떤 비극을 더 맞게 되었을지는 나름 상상에 따라 전개될 일이다. 차지철과 박정희 일당이 79년 10.26 당시 전개된 정치, 사회 상황을 보면 국민이 겪어야 할 비극이 보인다. 현대사에 수많은 독재 역사를 보면 20년이 넘는 독재는 거의 막판에 가깝다. 막판이라 저지르는 폭압정권도 잔혹사 자체다.

차지철과 박정희가 안가에서 크레르 루주 정권의 2백만 학살을 들먹였다니 끔찍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김재규의 선택이 정의가 되지는 않았다. 달라진 세상에서 어떤 기록으로 남을지 앞으로의 세상이 궁금한 것은 우리 모두가 아닐까. 

강 산 <탐사보도팀>

 

우리 현대사에 장막을 걷어낸 인물은 공과功過의 논란은 뒤로하더라도 김재규다.

1979년 10월26일 밤, 궁정동 안가에서 들린 총성은 유신독재의 종말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경호실장 차지철과 대통령 박정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그들은 유신 종말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7개월 뒤, 1980년 5월24일, 광주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국가 혼란 속에 김재규는 조용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국가내란죄’라는 전두환 일당의 심판이었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살인마 전두환이 정권을 잡기 위한 시나리오 속 징검다리로 사용된 초고속 김재규 처형, 그리고 광주 5.18 선동이었다.

그동안 때만 되면 김재규의 재평가 논란은 계속되었지만 이제 유족의 재심 청구로 무덤 속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 이슈가 공론화되었다.

내란을 목적으로 최고권력자를 죽인 살인자냐, 국민희생을 막고 독재의 사슬을 끊은 혁명가냐. 40여년이 흐른 지금 다시 뜨거운 화두가 우리 사회에 던져진 것이다. 

유족과 변호인단은 ‘내란죄’를 부정한다. “살해 동기는 내란 목적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회복이었다”는 주장이다. 사법적 결론을 뛰어넘어 역사 재평가로 이어질 중대 심판이 열리게 된다.

최근 연이은 다큐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새로운 증거들도 쏟아졌다. 재판과정의 내용들과 녹화테잎, 기록, 삭제된 검찰조서까지 드러났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으로도 충분히 달라질 것들이 많지만 법조계 시각은 확신범을 국가반란죄로 사형한 것은 부당하다는 거센 주장이다.

다음은 당시 계엄사와 보안사 주도하에 검찰 조사는 물론 재판 과정에서도 재판정 뒤 비밀방에서 쪽지를 재판관에게 계속 내보내 ‘쪽지 지시’속에 진행된 재판으로 불법이며 부당한 재판이었다. 한마디로 짜고 친 고스톱으로 전두환의 시나리오 연출에 따라 진행된 연극 재판인 셈이다.

 

재심청구 신청한 민변

 

유족과 변호인단은 방송보도 녹음테이프를 입수·분석해 재심 근거를 마련했다. 녹음테이프는 보안사가 재판부 몰래 불법 녹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변호인단이 공개한 1심 공판 녹취록에 따르면, 재판부는 김재규 측의 녹음신청을 기각했었다. 

유족 대표 조카 김성신은 “당시 보도는 철저히 통제됐고 10·26의 진실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나 정보가 거의 제공되지 않았다”며 “새로 발굴된 당시 자료들을 바탕으로 10·26을 역사로서 해석해볼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기자회견을 통해 “당시 보안사령부가 쪽지재판을 통해 재판에 개입한 사실과 공판조서가 당시 발언 그대로 적히지 않은 사실이 녹음테이프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며 “이번 재심의 가장 큰 목적은 ‘내란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를 다투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민변은 ‘대통령 각하의 무덤 위에 올라설 정도로 내 도덕관이 타락해 있진 않다’고 말하는 김 전 부장의 최후진술 등 일부 녹음 테이프를 재생하며 “김 전 부장은 적나라하게 박 전 대통령의 살해동기가 자유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변호인들은 대법 전원합의체의 판결 이후 판결문 열람신청을 했으나 법원은 1년간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그마저도 다수의견만 드러나고 소수의견은 드러나지 않았다”며 “당시 군법회의 과정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 녹음을 신청했지만 재판부가 기각결정을 내린 점, 재판 과정에서 (보안사의) 쪽지가 날아들었다는 등 당시 발언을 보면 당시 재판 과정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민변은 ▲김 전 부장의 재평가가 필요하다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부득이한 살인이었다는 동기를 밝혀야 한다 ▲사법부 치욕을 씻어야 한다 ▲변호인의 접견권이나 김 전 부장의 변호인 조력권 등이 침해됐다 ▲박 전 대통령을 살해한 동기가 왜곡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란죄로 유죄를 받았고 정승화 당시 육국참모총장은 무죄를 받았다는 등의 재심 청구 취지를 밝혔다.

 

전두환 감시 지시대로 재판 무효

 

민변은 보안사령부가 법정 뒤에서 재판부에 쪽지를 전달하며 재판에 개입하고, 허위로 공판조서가 작성되는 등 불법적으로 재판 절차가 진행됐다고 재심 사유를 밝혔다. 또 “녹음테이프 녹취록을 받아 검토한 결과, 보안사령부가 쪽지 재판을 통해 재판에 개입한 사실, 공판조서가 김재규가 발언하거나 재판에서 진행된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지 않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했다. 

공판기일 녹취록을 보면, 김재규의 부하 박흥주 대령 변호를 맡은 태윤기 변호사가 ‘쪽지 재판’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내용이 나온다. 태 변호사는 “M16을 거총한 군인들이 경계하는 삼엄한 군법회의에서 계속 해서 쪽지가 날아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비상계엄하 단심을 받아야 하는 박 피고인을 위해서 위헌 여부 제정 신청을 했던 것인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짓밟혀버렸다”고 변론했다. 

민변은 공판조서도 허위로 작성됐다고 설명했다. 변호인단이 공개한 1심 공판기일 녹취록에 따르면, 재판부가 “어제 피고인들이 퇴정하면서 유혁인(당시 청와대 정무1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었는데 그 요지를 알려드리겠다. 

(중략) 피고인들에게 각별히 불리한 증언은 없었다”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즉 피고인이 퇴정한 뒤 증인신문이 이뤄진 것이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에 대해 반박할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으므로 위법한 절차 진행이다. 하지만 공판조서에는 “별 의견 없다고 하다”라고만 기록돼 있다. “사실과 다르게 기재돼 있거나, 축소되고 의미가 왜곡된 경우가 많다”며 “변호인들은 공판조서를 1심이 끝날 때까지 전혀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민변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한 동기도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권총으로 암살할 당시 “각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말했고, 김계원 실장을 팔로 치면서 “각하를 똑바로 모십시오, 이 버러지 같은 친구”라고 말했다고 수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하지만 범죄사실에는 이 같은 사실이 삭제됐다. 변호인단은 “의도적으로 살해 동기가 대국적 정치, 민주주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을 애써 지우고자 하는 의도”라며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가 권력 공백기에 김재규의 행위를 내란 목적 살인죄로 왜곡, 과장함으로써 정권찬탈에 이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잡아야 할 역사, 강신옥 변호사

 

처음엔 박선호 의전과장 변호인이었다가 김재규 가족들이 선임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도 김재규 재판에 관심이 있다며 내게 변호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인권 변호사 황인철, 홍성우, 이돈명, 조준희 등이 맡았고 이후 자원한 변호사도 열댓명이 되었다. 

“두려웠지. 그러나 우린 용기가 있었다. 정의로운 일이었고 무엇보다 김재규와 같은 생각이었다. 박정희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히틀러를 죽인 것과 같은 거다. 물론 경제적으로 잘살게 된 면도 있지만, 박정희가 한 짓은 히틀러가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처음부터 고초를 겪을 수 있다는 각오로 시작했다. 나는 이미 민청학련 사건을 변호하다 잡혀들어가서 7개월 형무소에도 있었다.”

당시를 술회하는 강 변호사는 이어,

“전두환 일당은 김재규를 향해 ‘왜 박대통령을 죽이고 자결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듯이 말했다. 김재규는 뒤처리할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라고 말했다. ‘설거지’를 하고 자결할 생각이라고 말했었다. 훗날 국회 5공 청문회 때 장세동(전두환의 심복)을 심문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김재규와 전두환 가운데 누가 더 훌륭한가’라고 물었다. 장세동은 ‘한사람은 대통령을 죽이고 한 사람은 대통령을 지낸 분’이라는 의도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결해야할 사람은 김재규가 아니라 전두환’이라고 했다. 전두환은 김재규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아주 나쁜 놈이다.”

또 뒷얘기도 잘 알려져 있다.

김재규는 4차 공판에서 ‘내 혁명이 정당하기 때문에 변명하는 변호사는 필요가 없다’며 변호사를 거부했다. 가족들이 협박받았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당시 부인은 물론 남동생도 붙잡혀서 고문을 받고 그랬다. 또 김재규는 수감 중 나와의 면회에서 박정희의 여자관계도 상세하게 공개했다. 수백명이었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도덕적 타락을 지적했다. 애국심보다 집권욕이 강했다. 이것이 박정희가 비극으로 끝난 이유다.

이미 김재규가 짜여진 각본대로 재판이 진행되고 부질없는 변론이며 이에 항의하는 태도를 역사에 남기기 위해 변론을 거부한 셈이다.

“김재규는 애국자다 반드시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 사육신도 250년 지나 명예를 회복했다”고 강 변호사는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