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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길

sisa3369 2026.02.28 09:09 조회 수 : 24

세조는 잔혹하기로는 손꼽히는 왕이지만 조선조 굵직한 일과 왕권 강화로 왕조 기반을 닦은 왕으로 평가도 있다.
새빨간 거짓이다.
폭군의 역사 기록은 언제나 폭군 편향으로 조작과 날조 역사일 뿐이다. 
그런 역사를 우리가 아는 것이 바로 역사의 힘이고 끝내 살아남은 역사인 것이다.
6백여년전, 세조는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의 차남으로 장자 문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단종의 숙부 중한 명이었다.
형제의 난 등 왕위 계승이 순조롭지 않은 조선 내내 그래도 적장자에서 적장자로 이어진 왕이 단종이다. 세종의 적장자 문종, 문종의 적장자 단종,,,
단종은 태어날 때 원손, 세손 그리고 세자에 봉해지는 정통 왕위 계승자인 것이다.
태어나면서 왕위 계승자로 봉해지는 왕이 별로 없는 것은 반란이나 직계 자손이 없었다는 것이 된다.
그런 적장자 정통 권력자 왕을 명분 없이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 했으니 세조의 저주는 당대에도, 역사에도 내내 남았다.
더 비극적인 것은 정통 권력자였기에 유교사상에 의한 추종 세력이 많았다. 
역사에 길이 남은 사육신, 생육신을 비롯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조카 단종을 죽였다.
또한 역대 최악 살인 군주답게 폐륜적 살인마 광기를 보였다.
역모 혐의로 동복 형제, 이복형제를 죽이고, 세종의 후궁들을 죽이고, 폐서인 시켰다. 또 그 자녀를 종으로 만들어 분산시켰다.
특히 단종의 장인까지 사사하고 문종의 현덕왕후를 폐서인하고 파묘까지 당했다. 왕족 주변도 피의 학살을 면치 못한 것이다.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을 죽였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종대왕 잔혹사
조선 최고 군주로 평가된 세종의 가족사는 참혹하다.
왕후를 비롯 세종의 여인은 12명이고 자녀는 18남 4녀를 두었다.
조선 역대 3번째로 많은 자녀가 번성했지만 이후 단종과 세조편으로 갈려 왕자들의 난으로 도륙 과 숙청의 비극을 겪었다.
5명의 왕자가 처형되었고 직계자손들이 유배로 내쳐졌다.
아들 문종이 병치레만 하다 재위 2년만에 죽고 수양대군에 의해 손자 단종마저 죽었으니 비운의 왕이었다.

단종(1441-1457)의 부인 정순왕후는 2년여 함께 살았다.
혼인전 단종은 1452년 6월 즉위한다. 12세였다. 
혼인도 수양대군이 영의정으로 권력을 손에 쥔 당시라 작당에 의한 것이었고 신혼생활도 목숨이 위태로운 나날에 눈물뿐이었다.
정통 계승 적장자이면서 보좌 세력도 탄탄한 단종이 위태롭게 된 비극은 생모 세자빈 권씨가 산욕열로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모친의 사망으로 그 흔한 수렴청정이나 외갓집 보호막도 없어진 것이다.
이어 단종이 자라면서 총애하던 할아버지 세종이 1450년 세상을 떠난다. 이어 내내 병환중이던 아버지 문종마저 1452년 죽었다. 또 모친이 죽은 후 젖을 물려 키운 세종 후궁 혜빈 양씨가 유일한 보호막 역할을 하다가 끝내 단종 옹립이 발각돼 교수형에 처해진다.
이제 단종은 혈혈단신 부모형제 없는 천애고아가 된 것이다.

공포 속의 단종이 영의정 수양대군에게 옥쇄를 갖다 바치고 상왕으로 물러난 뒤에도 궁궐 안팎에서 연일 피바람을 듣고 있는 단종 부부는 숨죽이며 지냈다. 사육신들의 단종 복위 모반이 발각되어 처형되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된다.
그리고 올 것이 왔다.
그 날은 폭염과 가뭄이 한창인 1457년 7월13일(음력 6월22일)이었다.
단종은 50여 명과 유배지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향했다. 폭염 속에 물길로 가다가 뭍에 올라 700백리 강원 산길을 지났다. 
‘단종의 길’ 곳곳에는 지금까지 영도교, 어수정, 행차고개, 단정, 뱃재, 등등 지난간 길의 전설을 전하고 있다. 곳곳에 기념비적인 기록도 남겼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단종의 길’을 찾는다.
동묘앞 청계천 다리 이름은 영도교다. 단종과 정순왕후가 마지막 이별 인사를 한 장소다.
두 사람이 영영 이별해 ‘영영건넌다리’ 여서 사람들은 영도교로 불렀다.
그때는 몰랐겠지만 이후 두 사람은 재회하지 못했다.
단종은 한강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여주 이포나루로 이동했다. 이포에서 내린 후에는 육로로 영월 청렴포에 닿았다.
청령포는 영월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육지의 섬'인 곳이다. 남한강의 지류인 영월 서강이 삼면을 둘러싸고, 유일한 육지에 접한 남쪽은 가파른 절벽이어서 도주가 거의 불가능한 곳이다.
단종은 10여일만에 유배지에 도착했고 4개월후 잔혹하게 죽었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죽은 후 염색일을 하며 82세까지 살았다. 그 사이 5명의 왕이 죽었다.

 

‘왕과 사는 남자’
이 이야기를 극으로 풀어낸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곧 천만 관객을 기록할 조짐이다.
세조의 계유정란을 극화한 것은 셀수없이 많다. 왕위 찬탈의 극적 구도가 흥미를 유발시킨 이유다.
그러나 극적 재미와 스펙타클이 없는 반란이후 처형과정을 그린 극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이유는 역사의 정의와 인간의 도리, 인간의 길을 보여준 탓으로 보인다.
왕좌를 차지하고 세상을 호령한 세조는 역사 속에서도 패륜 폭악 독재의 왕으로 남았고 세상 어느 곳에서도 기념물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2년 재위의 초라한 왕 단종은 ‘단종의 길’을 비롯 기념물도 많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인간은 그런 것이다.

권력과 부를 추종하지만 그속에서도 올바름과 인간의 도리를 중히 여기는게 세상 이치다.
바로 1년전에도 그 이치를 모르고 장기집권 제국 히틀러를 흉내 내고 ‘세조의 길’을 쫓다가 감방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마적떼 수괴 윤가 부부가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되고 교훈으로 남는다.
< 심 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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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26.02.28 / 조회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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