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악과 탐욕으로 가득하고 정의는 더디게 온다.
악의 폭거에 흘린 피는 역사마저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다.
멀지만 가까이, 80년 5.18 광주에서는 총칼을 든 국군에게 수천명이 살상 당했다.
내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내 형제 자식들이 죽지 않았다고 잔혹한 불행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다음의 불행이 어쩌면 당신 차례가 될수 있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다음의 불행은 45년만에 서울 한복판에서 한밤중에 터졌다.
‘윤가 마적떼’들이 저지른 군반란 쿠데타로 영구집권을 노렸다.
본보는 12.3 군반란 일당을 ‘윤가 마적떼’로 칭한다.
마적떼는 19세기말 만주, 몽고 등지에서 떼로 몰려다니며 악질적 강도 짓을 벌였다.
서울 한복판 국회의사당에 마적떼가 출동한 밤, 그 뒤에는 검사 마적떼들이 있었다.
극적으로 미세하게 0.7% 차이로 정권을 잡은 직후부터 윤석열은 영구집권을 획책했다.
군출동 반란 명분을 위해 줄기차게 북을 자극하고 드론 공격을 하고 전쟁까지 도발했다.
정부 곳곳에 검사를 파견해 알박기와 부처장악, 정보공유 방식으로 사전 준비작업도 했다.
이는 전두환이 보안사 요원들를 이용해 군을 장악하고 정부기관도 알박기 한 사례와 같다.
사전 준비한 시나리오에 계엄령을 발동하고 군과 탱크를 출동시키고 각 부처를 장악을 준비했다.
이 모든 것은 45년전 살인마 전두환 일당이 저지른 쿠데타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광주시민을 학살하듯, 학살 수거대상자 명단도 사전에 꼼꼼히 준비했다.
군반란 성공 이후
마적떼들의 12.3 군반란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밤 국회의사당은 장악되었고 정부기관, 특히 선관위 건물은 ‘선거조작 시나리오’를 위해 특별한 장악 조치가 실현된 것도 드러났다.
지방 행정기관과 예비사단 심지어 한예종 예술대학교도 장악해 반란에 사용하려 했다.
12.3 군반란의 백미는 500명씩을 수용할 수 있는 3-5군데 철창 수용시설이었다.
최근 특검이 직접 현장 확인한 수거소 시설은 연평도, 백령도등 섬 시설과 DMZ의 군시설까지 확보해 놓고 있었다.
수거 대상 명단에 있던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 내렸을 터였다.
정청래 당대표의 ‘서해 꽃게 밥’이 되었을 것이란 말이 그저 하는 말이 아니다.
마적떼에게 두려운 것은 없었다.
거칠 것 없는 작전과 인력동원, 군외부 사람이 비화폰을 지급받아 장군들을 지휘하고 반란에 대비한 대목도 충격적이다.
이미 무너진 국격과 국정 파괴는 전쟁 발발시 나라가 어떻게 되었을지도 서늘하기만 하다.
반란은 무당, 점쟁이, 사이비목사 등 성추행 장군 등이 주축이었다.
김건희 또한 아무리 룸방에서 몸팔던 창녀라지만 이런 식의 막가파식 국정파괴는 유례조차 찾기 힘들다.
천박하고 배운 것 없는 창녀에 놀아난 자들의 면모를 보라.
서울대, 경찰대 수석, 고시합격자들, 권력을 누리고 가진 것 많은 지식인들이 하는 짓은 비겁하고 치졸하기만 하다.
조선말, 일제에 나라를 팔아 넘긴 친일파 밀정들과 무엇이 다른가.
안하무인 권세의 검사들이 김건희 조사를 경호시설에서 핸드폰까지 뺏긴 체 수사를 했다니 출세를 위해 배알도 내던지고 조작에 조작을 계속했다.
이래서 검찰은 괴멸되고 검사는 일제순사나 헌병급으로 전락했다.
국가 몰락에, 군반란에 협조한 검사들. 장관, 국짐당 의원들,,, 모두 한반도에서 쓸어내야 할 마적떼들이다.
자신의 부귀영화, 호위호식만을 위해 국가와 국민을 저버린 마적떼들.
12.3 군반란 이후 1년반이 지났지만 아직 반란은 진행 중이다.
지방선거판에서도 ‘윤어게인’을 외치며 군반란을 정당화하고 있다.
12.3 반란 혐의로 곧 감옥에 갈 놈들까지 선거판에 뛰어들어 유세중이다.
어쩌자는 것인가.
광주 민주항쟁이 재연되고 군인이 국민을 살상하는 세상을 원한다는 것인가.
특검 재판은 시작되었지만 언제 끝날지도 오리무중이다.
사법부 판사들의 농간으로 갈 길도 멀고, 뒤집힌 판결로 결론도 아리송하다.
광주민주항쟁 이후에도 전두환 지지율은 높았다.
12.3 군반란 후에도 국힘당을 지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뒤집고 어지럽힌 자들이 단죄되는 않는 세상이다.
윤석열 인성
‘윤가 마적떼’들이 청와대를 거부하면서 1조원의 혈세가 사라졌다.
윤석열이 저질러 낭비한 혈세가 수십조로 알려졌다.
술 처먹고, 매관매직에, 패악질한 것 외에는 어떤 공약도 지키지 않았다.
‘입벌구’ 별명대로 입만 벌리면 구라치는 윤가 때문에 국정이 무너졌다.
윤석열의 인성부터 살펴보자.
어렸을적부터 아비에게 고무호스로 맞고 자랐다는 윤가다. 온세상은 이때 모든 것을 짐작했어야 했다.
서울대 다닌 자식을 몽둥이질 했다는 부모 얘기는 듣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아들 하나를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특히 1인지상 대통령이 되었어도 부모는 단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은 모친이 “니가 그 자리에 있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한 대목으로 설명은 충분하지만 직장생활의 뒷얘기도 가관이다.
술처먹고 놀다보니 10년만에 사시에 합격했다. 10여년 어린 동기들과 또는 후배 상사를 모시기는 그 인성에 힘들었을 것이다.
더러운 인성 탓에 검사생활 내내 징계에 한직을 떠돌다가 검사사표, 재임용을 거친 파란만장 직장이었다.
그러다 만난 게 박영수였다.
박영수 특검은 나이는 8살 위지만 사시 기수는 20회, 까마득한 13기 선배였다.
박영수가 수원지검 강력부장을 거쳐 대검 강력과장일 때 윤석열은 대구지검과 강릉지청 검사였다.
이후 강릉 근무 경력 때문에 한량 박영수는 윤석열 ‘가방모찌’(쫄때구)를 대동하고 강름으로 술집순례를 다녔다고 한다.
윤가는 총각이었고 술 잘먹고 놀기 좋아하니 가방모찌 깜으로는 딱이었다.
그렇게 지금의 악의 축이 구축된 셈이다.
지금껏 해온 일도 모두 막가파 조폭을 넘는 악행들이다.
죽여야 할 대상은 철저히 조작했고 모든 악의 수단을 동원했다.
뒷돈 받고 봐줄 대상은 사건조차 만들지 않았다. 날마다 술 먹을 공상과 놀기에 바빴다.
술처먹는 방식도 기괴했다.
멕주에 소주나 양주를 섰어 먹는 폭탄주를 입을 벌리고 홀인원, 이글로 명명된 한모금에 마시기, 두 모금에 마시기를 자랑했다.
인간이 아닌 미친 짓이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미친 짓이 더욱 진화해 주위 사람들을 괴롭혔다.
재벌 회장이 기절하고 업혀 나오고 며칠씩 숙취에 시달렸다는 말은 널리 퍼졌다.
그들도 알았다. 미친 놈들의 미친 짓을.
왜 그들은 동조하고 박수만 쳤을까.
마적떼와 주위 친일파 같은 자들 때문에 국정이 파괴되었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영구 격리가 마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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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26.05.22 / 조회수: 1 세상은 악과 탐욕으로 가득하고 정의는 더디게 온다. 악의 폭거에 흘린 피는 역사마저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다. 멀지만 가까이, 80년 5.18 광주에서는 총칼을 든 국군에게 수천명이 살상 당했다. 내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내 형제 자식들이 죽지 않았다고 잔혹한 불행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