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며 반드시 가야 할 곳인 ‘전몰자 계곡’에 도착해 퍽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입구부터 묘역은 더럽고, 녹슬고, 잡초 무성한 변두리 공원 모습이었다. 위대한 묘역은 이미 냉엄한 역사의 현장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인근 전몰자의 계곡’은 프랑코가 투옥시킨 정치범들을 석방을 미끼로 강제노역에 동원시켜 건립한 국가묘역이다. 묘역에는 1936~1939년 내전 당시 동족의 총칼에 사망한 병사와 시민 3만 명 이상이 잠들어 있다.
40여 년간 철권통치를 휘두른 독재자 프랑코는 1975년 사망했고 자신이 준비한 장엄한 묘역에 묻혔다.
프랑코는 여느 독재자 못지않은 독재자의 길을 걸었다.
이집트 기자의 쿠푸왕 피라미드를 흉내 내 죽기 전에 호화 묘역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 과다라마 산 정상에 세계에서 가장 크고 높게, 높이 150미터, 무게 20만 톤의 화강암 대리석 십자가를 세우고 지하 260미터에는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과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다. 감옥에 갇힌 반대파 정치범 2만 명이 20년 동안 산정상의 암반을 파내고 만들었다.
성당 내 오른쪽에는 프랑코가 묻혔고 왼쪽에는 파시즘 본산 팔랑헤당 초대 당수이며 내전 발발 직전 좌파에 처형된 리베라의 무덤이다. 리베라는 호화판 묘역 건립 반대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술책이기도 했다.
정권을 잡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3년간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불사한 프랑코,
내전이 끝나자 내전 참상과 보복 학살을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며 국회를 협박해 ‘침묵의 법’까지 제정해 연구나 논문 발표, 영화나 드라마 소재 등의 사용도 금지시켰다. 프랑코는 화해의 상징, 속죄의 상징이라며 과거를 잊고 화합을 주창했다. 영구 집권자 총통의 철권통치 아래서 가능한 짓들 이었다. 내전 이후 국민들은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쿠데타, 스페인내전의 금기어가 생긴 것이다.
우리도 내전인 6.25 전쟁을 치르고 이후 공산당은 입에 담지 못한 것과 닮았다. 스페인과 한국은 여러 가지로 닮았다.
권불십년 화무실일홍,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제국의 총통으로 영원할 것 같은 프랑코가 묻힌지 45년 만에 파묘破墓를 당했다.
쿠데타로 내전을 일으키고 2백만 명의 인명을 희생시킨 독재자의 유해를 국가묘역에 계속 두는 것이 옳은가를 놓고 논쟁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스페인 민주화 열기 속에서 프랑코 묘역 유지는 좌 우 정권의 난제였다.
우파와 가톨릭 보수진영에서는 진보 사회당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과거의 상처를 헤집으려 한다는 비판과 프랑코가 스페인을 혼란에서 구해 안정과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라는 주장도 계속했다. 과거의 망령을 헤집지 말고 프랑코 지우기를 멈추라고 요구도 했다.
마침내 프랑코의 파묘 날에는 지지자들이 ‘프랑코여 영원하라’ 등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마드리드 국회 관광을 하는 중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설명을 들으니 내전 당시 학살당한 가족의 어머니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 ‘암매장된 장소라도 알려 달라’는 시위였다.
또다시 5.18 이다.
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아 우리의 독재자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우리의 국립묘지에서도 퇴출 운동은 진행되고 있다. 친일 행적을 감추고 국립묘역에 누워있는 매국노 역시 대부분 장군이나 권세를 누린 자들이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일당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 조국 산천 곳곳에 널려있는 동상, 현판, 표지석 등 전두환 지우기가 한창이다.
청남대의 동상이 철거되고 현충문 현판도 교체되었다. 일해공원 명칭도 바뀌고 곳곳의 표지석, 조형물, 기념석, 헌시비, 공덕비, 기록, 시설물, 전두환 범종, 길이름, 백담사, 세종기지의 글씨 등도 없어진다. 아직도 곳곳에 찬양 잔재가 수두룩하고 청산해야 할 것은 많다.
LA에도 산페드로에 있는 우정의 종각은 미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 한국정부가 기증한 것이지만 전두환 팻말이 아직 남아있다. 기증자도 아니고 방문이라니, 격에 맞지 않는 처사다.
5.18기념재단LA에서 시의회에 철거요청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 철거만이 숭고한 영령에 덜 부끄러울 결정이다.
반성이 없으니 용서도 없다. 광주에는 철창에 갇혀 두들겨 맞는 전두환이 있고, 망원동 5.18 묘역에는 입구 바닥에 놓여있는 ‘전두환 기념비’를 누구나 밟고 지나간다. 이 기념비는 1982년 담양 성산마을에서 일박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운 것으로 이젠 치욕의 상징이 되었다.
전두환은 끝내 용서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갔다. 그 일당들도 끝내 반성 않고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 지옥행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지금 광주정신은 미얀마를 비롯 곳곳에서 시민저항정신으로, 민주화의 꽃으로, 상징되어 인종과 국경을 넘어 소환되고 있다.
역사는 힘이 세다. 역사가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정치인, 권력자들은 냉엄한 역사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돌아볼 줄 모르고 반성, 자정 능력이 없는 권력은 무너질 뿐이다.
누가 뭐래도 ‘살인마 전두환’은 시위 때만 나오는 말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나 세계 도처에 독재자는 많다. 종말 또한 유사하지만 독재자들은 영원한 권력으로 착각한다.
한국은 또다시 전두환을 넘보는 ‘무대포’가 나타나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에, 떡 하나 나누어주듯이 국정 자리를 ‘시다바리’ 졸개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조폭처럼 몰려다니며 룸방에서 폭탄주 나누던 사이여서 범죄자에 각종 흉악범들에까지 국녹을 나눠먹고 있다. 어줍잖은 권세로 챙길 것만 혈안이 돼 산 인생들이 유리알처럼 드러나고 있다.
무대포 자신부터 개판 인생을 살아왔으니, 주변을 봐도 뒤돌아봐도 마찬가지고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찬양 역시 그냥 헛소리가 아니다. 추앙한대로 따라 가겠다는 심사일 것이다.
기껏 5년. 5년은 얼마나 긴 시간인가. 단언컨대 5년을 채우기조차 어려울지 모른다.
그들은 모른다.
꽃이 피기는 힘들어도
지는 건 순간인 것을,
늦게 피는 꽃은 있어도
피지 않는 꽃은 없다는 것을,
진실은 늦더라도 밝혀지고,
악은 한 순간에 반드시
몰락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 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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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22.05.18 / 조회수: 42 10년전,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며 반드시 가야 할 곳인 ‘전몰자 계곡’에 도착해 퍽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입구부터 묘역은 더럽고, 녹슬고, 잡초 무성한 변두리 공원 모습이었다. 위대한 묘역은 이미 냉엄한 역사의 현장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인근 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