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당연한 것인가.
어지러울 정도로 세상이 복잡하다. 옳고 그름이 뒤섞이고 서로 악다구니만 질러댄다.
무엇이 옳은가. 정녕 그것을 몰라서 악다구니로 감추는 것인지 궁금하다.
20세기의 악마, 히틀러나 스탈린도 지지 추종자들이 엄청났다. 지금은 당연 악마화로 덮여 있지만 당시에는 몰라서 추종자들이 설친 것일까.
지금도 우리 사회에 악의 무리들을 지지하고, 알든 혹은 모르든, 열광하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분노, 응징, 설득, 화해, 용서,,, 좋은 단어들은 많지만 과연 가능하고 적절한 말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트럼보를 아시오
많은 사람이 좋아 하는 영화 ‘로마의 휴일’을 쓴 작가 트럼보는 이름을 숨기야 했다.
이미 1940년대 할리우드를 주름잡던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1905~1976)는 공산주의 광풍에 휘말리며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 상원의원 매카시는 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 2월 의회에서 국무성 내 소련 첩자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증거를 대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매카시는 반공을 내세워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공산주의 혐의를 씌웠다. 매카시는 서류뭉치를 흔들며 간첩 명단이라고 외쳤지만 끝내 내용은 공개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고 심지어 죽는 사람도 발생했다.
이른바 ‘매카시 선풍’이다.
<워터 프론트> <초원의 빛> <에덴의 동쪽> 등의 영화를 만든 엘리아 카잔도 공산주의자를 고백하고 동조자 명단을 넘겼다. 이어 빨갱이 소탕에 관한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하기도 했다.
당시 할리우드를 휩쓴 매카시 광풍에 트럼보도 휩쓸린다. ‘반미활동 조사위원회’는 영화계가 국가를 전복하려는 공산주의자와 그 동조자들을 색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 사회 전반에 혐의를 벗지 못해 공직을 떠난 사람만 5300명이 넘었으며 수십만 명이 조사를 받았다.
미국 공산주의자였던 트럼보와 그의 동료 작가들은 조사위원회의 청문회에서 ‘당신은 공산당 당원이거나 당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묵비권을 행사했다. ‘연방정부의 권력 남용을 막고 시민들에게 종교•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미국 수정헌법 1조에 위배된다는 판단에서다. 청문회에서 답변을 거부한 트럼보와 동료 10명은 의회모독죄로 기소됐고 결국 교도소에서 1년간 복역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도 멀리 하고 친구들도 하나 둘 만남을 꺼려 자연스레 칩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트럼보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다. 출소 후 그는 이름을 숨긴 채 삼류영화사에 극본을 팔며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트럼보는 11개의 가명을 사용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다. 3일에 한 편씩 쏟아낼 만큼 밥벌이 글쓰기를 계속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명예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로마의 휴일’(53년)과 ‘브레이브 원’(56년)이 연이어 아카데미 각본상과 원작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영예를 되찾는다.
그러나 작가명은 트럼보가 아닌 타인의 이름이었다. 동료 이름을 빌린 대가로 원고료까지 나누었다.
1953년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은 월리엄 와일러 감독이 만들어 대 히트를 했고 두번의 아카데미 수상으로 헐리우드에선 트럼보의 작품인 것을 알만한 사람은 알게 되었다.
영화 ‘트럼보’
13년동안 작품 활동이 금지되고 11개 이름을 빌려 발표해야 했던 트럼보. 블랙리스트 1호 작가, 유령작가, 2015년, 영화로 만들어진 ‘트럼보’는 당시의 매카시즘을 잘 보여준다.
천재 작가였지만 내내 협박과 굴욕 냉대속에 살아야 했다. 동네에서는 빨갱이라고 페인트칠, 유리창깨기 등을 당하기 일쑤였다.
트럼보의 반대편에 선자들이 존 웨인, 로널드 레이건, 월트 디즈니 등이다.
배신과 밀고, 친구의 의리, 테러와 따돌림, 가스라이팅이다.
영화 개봉 40년, 트럼보가 사망한지 17년, 아카데미는 ‘로마의 휴일’ 작가 트럼보를 1993년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자로 다시 결정했다.
생전에 아카데미 상은 이름을 빌려준 이안 맥켈란 헌터가 대신 수상했고 트럼보는 TV로 지켜보기만 했다.
부인 클레오는 수락하고 트로피를 대신 수상했다. 클레오는 2009년 사망했다.
또다른 이야기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은 1883년, 부유하게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법학, 경제학 등을 공부한 후 그 대학의 경제학 교수가 되어 명쾌한 저술과 강연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1915년 ‘어린이들에 대한 노동 착취를 공론화하였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직됐다. 1917년에는 『거대한 광기』라는 책을 출간하여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미국의 참전을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었다. 1919년 무죄 평결을 받긴 했지만, 어느 대학도 그에게 일자리를 주려 하지 않았고, 아내와도 이혼하게 되었다.
시대와 사회의 가스라이팅, 냉대 속에 버몬트 숲으로 낙향해 채식생활로 생을 마쳤다.
신념과 삶의 대비는 비극적이다.
세상은 때때로 어둠 속에 잠겨있다.
짙은 어둠속에 앞은 한치도 보이지 않는다. 우주를 가득 채운 암흑 물질처럼.
달튼 트럼보(1905-1976)
댓글 0
일자: 2023.07.30 / 조회수: 18 태평성대,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당연한 것인가. 어지러울 정도로 세상이 복잡하다. 옳고 그름이 뒤섞이고 서로 악다구니만 질러댄다. 무엇이 옳은가. 정녕 그것을 몰라서 악다구니로 감추는 것인지 궁금하다. 20세기의 악마, 히틀러나 스탈린도 지지 추종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