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번 칼럼 글이 참 좋습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수 있나요’라는 말을 듣는다.
글쓰기의 감옥, 어떤 글쟁이가 글쓰기를 원고지 네모 칸의 감옥에 갇혀 늘상 산다는 표현을 했다.
나의 글쓰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원고 마감이 가까워도 한 줄 생각나지 않는 답답함, 그런데도 막상 마감에 임박해 책상에 앉으면 급한 마음속에 그럭저럭 글은 써지고 아직까지 데드라인을 펑크 낸 적은 없다.
유년시절, 손위 형의 초등 1학년 국어책을 먼저 외웠다는 엄마의 자랑, 교실에서는 ‘몇 페이지를 외워보라’는 주문에 자랑 삼아 외웠던 기억들.
그래서였던가 어릴 적부터 이야기를 좋아했고 책을 항상 가까이 했다. 만화부터 잡지, 신문까지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한 결과 잡학에 해박한 사람이 되어갔다.
문청시절 이루지 못한 등단의 꿈은 생계에 밀려 뒤늦게 이루었다. 모 신문 공모에서 시와 소설 두 가지를 통과했으니 나름 등단의 공인은 받은 셈이다.
이미 글로 성공은 가당치 않고, 잡필(칼럼, 산문, 신문)을 열심히 쓰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살다 가지 않을까 싶다.
글 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용이 안 드는 취미다. 종이와 펜, 컴푸터 아니면 핸폰만 있으면 글을 쓸 수 있다. 재료값도 없고 따로 준비할 것도 없다.
이민자들이 하는 유명한 소리는 ‘내 이야기를 쓰면 책 몇 권은 된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라. 쓴다는 것에 의미를 준다면 모를까 식상한 그저 그런 이야기를 누가 읽어줄 것인가.
많은 사람이 그것을 간과한다. 공들여 만든 드라마도 조금만 식상하면 채널이 돌아간다.
글쓰기 전에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식상과 진부, 클리쎄!!!
글은 힘이 쎄다. 총보다 쎄다지 않던가.
그래서 글쟁이를 건들면 안 된다는 말은 오래된 전설이다. 반드시 원수를 갚는 건 칼잡이 뿐만 아니다. 글쟁이는 글로 원수를 갚는다. 소설가는 원수를 그대로 묘사해 악당으로 등장시키거나 실명을 그대로 써서 악당으로 둔갑시킨다.
유명 소설 혹은 유명 영화나 드라마의 악당이 자신이라면, 내 이름이라면, 얼마나 끔찍할 일인가.
온 나라 아줌마들의 악당이 되고 온 가족의 철천지원수가 되는 것이다.
글쟁이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글쓰기에도 십계명이 있다.
너무 많아 나열도 힘들지만 나름 정리를 해보자면, 글에 힘을 빼고 즉, 겉멋을 내지 말고 가장 쉽게 써야 한다. 쉬운 단어 짧은 문장도 기본이다. 글이 길어지면 벌써 힘이 들어간다.
다음은 좀 어렵지만 생각의 맨 밑바닥으로 내려가 써야 한다. 마음 밑바닥의 생각을 끌어 올려 쓰면 독자에 감정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결국 글쓰기는 내 마음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인 것이다.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다. 전문 글쟁이들도 방안을 서성이고, 칸트처럼 산보를 나가고, 좌정해 묵상을 하고, 별 짓을 다한다.
토지의 박경리 작가는 글이 안 써지는 때 밭에 나가 몇 시간이고 호미질을 했다고 한다.
또 박완서 작가는 우두커니 창 밖을 바라볼 때 일정한 표정이 있다고 한다.(심통 난 표정)
왜 그러느냐고 손자가 다가와 물으면 옆에 남편이 “지금 할머니는 거짓말이 생각 안 나서 그러니 건들지 마라”고 했다는 우스개가 전한다
글 잘 쓰는 법도 없고 글 잘 쓰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단지 노력과 오랜 결과로 작품이 이루어질 뿐이다.
피로 쓴 원고, 피 같은 글, 이런 말들이 곧 험난한 글쓰기를 설명한다.
전문 글쟁이도 감옥, 피, 지옥의 시간으로 표현하는 것은 글쓰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의미한다.
다음으로는, 글쓰기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사용해서는 안될 것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것들을 알아야 한다.
먼저 ‘비문’ ‘철자법’ 등은 지켜야 할 것이 되고, ‘가식’ ‘거짓말’ 등은 절대 해서는 안될 것들이다.
간단한 것들만 설명했지만 더 많은 고뇌가 뒤따르는 것이 글쓰기 인 것은 모두가 통감하는 사실이다.
많은 글을 읽고 쓰다 보면 언젠가 산 중턱쯤에는 가 있지 않겠는가.
빅뱅 138억년전, 지구 탄생 50억년, 인류 기원(300만년-200만년전) 호모 사피언스 20만년전,
이런 것들이 우리의 역사라면, 인류가 가장 사랑한 것은 무엇일까.
전문 연구 학자들이 정립한 설은 바로 ‘이야기’story다. 원시인부터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했다. 바위에서나 동굴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것을 바위에 새겼다. 형상으로 그렸고 나름 상형문자로 이야기를 남겼다.
다음은, 종이와 필기구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길고 긴 이야기를 남겼을까??
인류 최초 서사시 ‘길가메시’는 5600년전 수메르 왕 길가메시 무용담을 그린 이야기다. 점토판에 새긴 무용담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이야기다.
25년전 이집트에 갔을 때 엄청난 상형문자가 새겨진 대리석 벽과 천정, 기둥에 놀랬다. 그들은 후세에 무엇을 남기려 했을까. 왜 그토록 이야기를 남겨야 했을까.
벽에는 6천년전 맥주, 와인 주조법, 그리고 농사와 낙농법들이 적혀있다. 왕과 신들의 이야기, 역사 기록도 남겼다.
고대 상형문자를 거북이 배나 짐승의 견갑골에 새긴 갑골문자는 주로 3200년전 동북아에서 사용했다. 그 사실조차 불과 120년전에야 알게 되었다.(중국 은허 발견)
그 이전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 각 마을에서 영특한 아이를 골라내 눈을 멀게 한 후, 이야기를 기억해 전달하도록 반복 교육해 사람들에게 전하거나 다음 세대에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할 이야기는 주로 역사나 왕, 장군의 무용담이었겠지만 일반인들의 전설, 신화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백성들의 삶, 애환, 지혜 등도 이야기로 노래로 만들어 전한 것이 오늘날 유사한 소설과 시, 노래가 되었다.
인간이 좋아한 이야기 전달 수단으로 어린애 눈을 멀게 해 사용했다니 이것 또한 이야기거리 임이 분명하지만 인간잔혹사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어릴 적 잠이 든 기억은 상상력과 새로운 앎의 뿌리가 되었다.
태초의 이야기 전달은 주로 생명보존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먹거리의 지혜와 생명 위험의 방어, 악천후 대비, 지형 정보, 얻어야 할 것은 차고 넘쳐나고 체득한 자만이 오래 살아 남았을 터이다.
이야기의 힘은 인간의 힘이 되었다. 역사가 되었고 문명이 되었다. 정치와 권력은 살아져도 문화만이 도시에 남는 이유다.
그나저나 모처럼 마음에 남은 이야기, 드라마 ‘나의 아저씨’.
그 배우는 명대사를 남겨 놓고 그리 홀연히 떠날 수가 있나!!!!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나 꼭 봐”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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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24.02.17 / 조회수: 72 가끔 ‘이번 칼럼 글이 참 좋습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수 있나요’라는 말을 듣는다. 글쓰기의 감옥, 어떤 글쟁이가 글쓰기를 원고지 네모 칸의 감옥에 갇혀 늘상 산다는 표현을 했다. 나의 글쓰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원고 마감이 가까워도 한 줄 생각나지 않는 답답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