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 최초 세계대전은 두발의 총성으로 시작되었다. 두발 총성 때문에 1천5백만명이 사망했다. 1차대전 비극의 참상은 역사나 영화, 소설 등으로 백 년 동안 셀 수 없이 나왔다.
1914년 6월 28일, 일요일, 오스트리아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가 보스니아 사라예보 시내를 오픈마차를 타고 달리고 있을 때 두 발의 총성으로 황태자 부부는 현장에서 숨지고, 18세의 청년 저격수 프린체프는 체포되었다.
세르비아 비밀결사단원 프린체프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암살 테러를 실행했다. 세르비아 정부는 사건 무관을 주장했지만 오스트리아는 보복을 결정하고 한 달 후인 7월 28일 정오,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것이 1차대전의 발발이었다.
두 나라의 전쟁이 주변국들의 저마다 사연을 갖고 참전하면서 유례없는 세계대전으로 치달았다.
동맹국 편은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 헝가리, 불가리아, 터키였고, 연합국은 영국, 프랑스, 세르비아, 러시아, 벨기에, 루마니아, 일본, 이탈리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포르투갈, 그리스가 참전했다.
두 편으로 나뉜 주변국들은 4년4개월동안 싸우면서 인류잔혹사를 기록했다.
오스트리아는 동맹국인 독일에 지원을 약속받았으며, 독일은 세르비아를 보호하는 러시아와 그 동맹국인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100년 이상 해상권을 독점해 온 영국은 독일이 위협적이어서 견제하기 위해 참전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역시 전쟁에 참여하면 독립시켜 주겠다는 영국의 약속 때문에 협력한다.
독일은 프랑스로 진격해 파리 부근까지 진입했으나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게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전쟁동안 강력한 영국 해군이 있는 연합군은 독일의 해외 식민지를 빼앗았고 독일은 차츰 식량과 전쟁 물자가 부족해졌다.
미국은 무기 판매에만 관심을 가졌으나 1915년 5월 영국 여객선 격침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죽자 1917년 4월 마침내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각기 사연을 내세웠지만 따지고 보면 식민지 쟁탈전이었고 강국들의 패권 대리전이었다.
전쟁은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났다.
18세 청년 민족주의자의 암살 일탈로 시작된 전쟁의 결과, 패전국 독일은 식민지를 모두 빼앗겼고 천문학적 배상금을 안았다. 오스만 제국은 영토가 크게 줄고 끝내 해체되었다. (1922년 해체, 1923년 터키 공화국 수립).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헝가리도 각각 영토가 크게 줄고 해체되었고, 불가리아는 남도브루자를 루마니아에 떼어주어야 했다. 국가들이 해체되고 영토와 인구를 잃고, 발칸과 중동지역에 많은 독립국이 생겨났다.
백년전에 일어난 1차대전에서 보듯이 두발의 총성 때문에 크나큰 비극은 시작되었다. 나름 명분이 있다하더라도 1500만명의 죽음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시작은 단순했지만 그 끝은 창대한 한 점 바람이 카오스를 창출해 냈다.
한국전(KOREAN WAR), 한국내전, 6.25동란 등으로 불리는 한반도의 잔혹사 역시 우리 민족의 최대 잔혹사다.
70년전, 패권 장악과 이념 갈등으로 비롯된 동족상잔의 비극 역시 따져보면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지역 쟁탈전에 불과하다.
전쟁 발발과 무관한 시민들은 최전선에서 피 흘리며 싸우지만 승리할 때도 얻어질 것은 없다. 3백만의 동족이 죽은 전쟁의 생채기는 70년이 지나도 깊고 참혹하다. 부모와 자식이, 부부와 형제가 만나지 못하고 안부조차 알 수없이 지냈다.
‘폭풍 224’ 암호명으로 계획된 전쟁은 6월25일 새벽 4시 선전포고 없이 기습 침공으로 발발했다. 그리고 3년1개월간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고 25,600일이 지난 현재 세계 최장 전쟁국가, 종전이 아닌 휴전 국가, 지구 유일 분단국가로 남은 한반도.
우리의 운명이 그러한가, 민족성 때문인가. 단지 불운한 역사 탓인가.
문제인 정부 들어 어렵게 조성된 평화무드가 남,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끝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어 전쟁을 도발하는 무리들에 의해 곳곳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북미 간 농간과 수싸움이 볼턴의 ‘그 일이 일어난 방’ 책에서 드러나고 한국을 조종한 더러운 과정도 진실규명 앞에 놓였다.
나라가 자주권을 잃고 강대국의 압박 하에 있다면 민족은 비극이며 불운하다.
설사 통일이 아니더라도 남북이 힘을 합치면 8천만 한민족은 세계에서 우뚝 서고 경제 번영과 평화를 누릴 수가 있다. 그러나 일부 쟁탈권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이념이 민족의 행복과 안녕을 가로 막고 있다.
8천만 민족 숙원을 사적 이익을 위해 해치는 무리가 또 있다. 탈북자 무리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금 한반도 전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탈북한 박상학 형제는 단체를 만들고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전쟁유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을 비방하고 체재를 부정하는 갖가지 침탈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전쟁을 불사하고 민족 비극을 아랑곳없이 불법을 돈 몇푼 때문에 자행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경고한바 있다.
박상학을 지원하는 세력도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몇몇 대기업을 비롯 보수단체, 또 통일부조차 명칭을 바꿔 지원했다. 보수야당도 이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대북전단 살포가 있을 때마다 휴전선 접경지대 주민과 연평도 등 섬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지자체도 문자재난메시지를 발송해가며 안전을 독려하고 있다. 그 수고와 비용 낭비가 지난하다. 정부는 법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고 지역 주민들은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북한 군사 도발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태생적 국민도 아닌 박상학 일당, 제 나라가 아니기에 무법자처럼 전쟁유발자가 되어 불법과 만행을 저지르는가. 이미 이들은 테러 공모 혐의로 고소되었다.
하찮은 대북전단으로 남북 대화가 끊기고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서둘러 전쟁유발자를 제거해야 한다. < 彦 >
사족: 6.25 동란, 6.25전쟁, 한국전쟁, KOREAN WAR, 등으로 불리지만 정확한 표현은 한국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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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20.06.30 / 조회수: 31 인류역사 최초 세계대전은 두발의 총성으로 시작되었다. 두발 총성 때문에 1천5백만명이 사망했다. 1차대전 비극의 참상은 역사나 영화, 소설 등으로 백 년 동안 셀 수 없이 나왔다. 1914년 6월 28일, 일요일, 오스트리아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가 보스니아 사라예보 시... |